독일의 철학자이자 독일 관념론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게오르크 헤겔이 주장한 '변증법'을 통해 중심 개념인 변증법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질문을 되풀이함으로써 상대방의 주장에서 논리적인 모순을 찾아내는 대화의 기술에 불과하다.
변증법은 생산적인 사고법으로 승화했고, 오늘날 변증법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헤겔의 변증법을 지칭한다. 변증법은 만물이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변화 과정에 있음을 주창하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내부적인 자기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보았다. 원래의 상태를 정(正)이라 하면 모순에 의한 자기부정은 반(反)이다. 만물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며 그 결과 새로운 합(合)의 상태로 변화한다.
정반합(正反合)의 개념으로 변증법을 정형화하였다. 헤겔의 이러한 변증법은 후 일 헤겔 좌파 철학자들을 거쳐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정반합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의 변증법을 설명하기 위해 하인리히 살리바리우스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표현 대신, '긍정-부정-부정의 부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헤겔이 주장하는 변증법이란, 문제가 생겼을 때 극복하고 한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사고법이다. 어떤 사물에 대해 모순되는 사물이나 문제점이 존재할 때 이를 통합해서 모순을 극복하고 더 발전된, 완벽한 해결법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사물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부모인 아버지 게오르크 루트비히 헤겔은 운송회계사 고문이었으며 어머니 크리스티네 루이제 프롬은 개인교수뿐만 아니라 고대어 및 현대어 그리고 학문의 기초를 가르치는 슈투트가르트의 공립 김나지움에서 수업받게 함으로써 나를 학문적으로 교육하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설교 사직을 선택하였으며 신학이 가진 고전문학 그리고 철학과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신학 공부에 충실하였다. 신학과 졸업 후, 나는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직업들 가운데 실제 설교 사직에 별로 구속되지 않는 직업, 이를테면 고전 문학과 철학 연구에 필요한 여유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외국에서 상이한 조건 밑에 생활하면서도 짬을 낼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였다.
피히테와 셸링 철학 체계의 차이점, 전자의 불충분한 점에 관한 논문을 써 그곳에 지원하였으며, 얼마 후 나의 박사학위논문, [행성들의 궤도에 관하여]의 공개 변론을 통한 심사에서 그곳 심사위원회로부터 교수 허가를 받았다. 1805년 헤겔은 예나 대학의 원외 교수 철학자로 채용된다.
1807년에는 헤겔 관념론의 핵을 이루는 정신현상학이 출판된다. 자기 주요 저서인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발전하고, '절대지'라는 최고의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했다. 절대정신은 변증법에 의해 도달되는 최고의 지점, 즉 더 이상 변화될 필요 없는 최고의 위치를 뜻한다. 얼핏 보면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과 고정화된 절대정신은 어긋나는 맥락이 있지만, 이러한 헤겔 철학의 전제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노에시스 노에 세오스 개념을 차용하여 절대정신은 순수 사유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사유로서 이러한 모순점을 논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헤겔은 인간의 정신이 절대적일 수 있음을 만천하에 선언했고, 인간의 정신 최고조에 도달한 근대라는 시대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헤겔이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절대정신(이성)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헤겔은 인간의 역사 역시 변증법적 발전을 겪는다고 파악하였으며 그 결과 이성이 최고의 발전 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상태를 역사의 종말이 명명하였다.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서 '자아'의 문제를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자아의 문제와 관련하여 헤겔은 칸트 철학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헤겔은 '개념'의 문제, 다시 말해 인간 사유의 산물 자체를 독자적인 그 무엇으로 간주한 것에서 칸트의 인식론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인식론에 접근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개념'은 헤겔 철학에서 일종의 '논리적 범주'로서 스스로 운동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헤겔 철학의 절대 지성을 종종 종교적인 의미에서 신개념과 연관을 짓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헤겔은 자신의 역사철학 강요에서 중세 철학에 대한 설명을 건너뛴다. 헤겔은 철학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신학에 기대었던 중세 시대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고 본다. 실제로 헤겔의 변증법에서 종교와 예술은 최종 목적인 철학으로 도달하는 과정에 위치한다.
헤겔은 프로이센이라는 국가와 프로이센의 개신교 교리를 자신의 철학과 조화시키고자 했다. 헤겔의 철학은 국가를 절대정신이 구현된 완전한 전체로 보는 것은 물론, 프로이센이야말로 그러한 이상이 잘 실현된 보편국가라고 주장하였다.
헤겔 철학을 비판한 마르크스를 비롯한 청년헤겔학파들이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또한 후로 그의 저서는 그의 저서에서 전체주의적 느낌을 받은 많은 철학자에 의해 비판받았다. 그의 사상은 국가, 종교, 철학을 아우르는 하나의 원리를 지향한다.
법은 객관적 정신의 즉자적 현실화인 저차원(低次元)의 단계의 것으로서, 참다운 자유를 목표로 하여 도덕의 단계, 다시 도의태(道義態)의 단계로 변증법적인 발전을 하여 간다. 이 도의태의 단계에서 정신은 사랑의 공동체인 가족으로부터 그것의 부정인 개인주의적 이익 공동체로서의 시민사회로 전진하고, 다시 시민사회의 부정을 매개로 하여 국가라는 최고의 단계에 변증법적으로 발전하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