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가 독특한 이론을 내놓았다. 세상의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기본단위를 고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모나드'이다 우리말로는 '단자'라고 불리는 개념으로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를 통해 우주의 조화를 논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철학에서 라이프니츠는 낙관론으로 유명하다.
라이프니츠는 일부 제한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우주가 신이 창조할 수 있는 최선의 우주라고 결론지었다.
라이프니츠는 르네 데카르트, 바뤼흐 스피노자와 함께 17세기 최고의 3대 합리 주의론자 중 한 명이다. 라이프니츠의 업적은 현대 분석철학을 앞당겼지만, 한편으로 그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적인 면도 있다. 그의 철학의 특징은 그 이전의 여러 가지 사상적 대립을 모두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서 조화시킨 점이다.
데카르트적 물체 관과 피에르 가상디의 원자론, 기계 관과 목적관, 섭리와 자유, 경험론과 이성론, 나아가 근세사상과 스콜라 철학의 조화까지 찾아볼 수 있다. 주요 저서로는 모나드론, 형이상학 서설, 인간 오성신론이 있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가 넓이도 형태도 없는 궁극적인 실체이며, 불생불멸의 존재라고 말한다. 모나드가 우주를 구성하면서, 전체를 비추고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모나드는 우주를 비추는 영원히 살아 있는 거울이다.'라고 정리했다. 라이프니츠는 공학과 물리학에 많은 공헌을 했고, 언어학, 정보과학, 확률론, 의학, 생물학, 지질학, 심리학 분야에서 나중에 나올 개념들을 예견했다. 그리고 윤리학, 법학, 신학, 정치학, 언어학, 철학, 역사학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방대한 분야에 걸친 라이프니츠의 공헌은 다양한 학술지와 수만 개의 편지, 그리고 출판되지 않은 원고에서 발견되었다.
라이프니츠 증명은 대부분 거의 기하학적 직감에 의한 사실이었다. 라이프니츠는 무한소라고 불리는 수학적 존재를 밝혀냈고, 역설적으로 이것을 대수적 성질에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라이프니츠가 "직선은 곡선과 같고, 어떠한 부분도 전부와 닮았다."라고 쓴 것을 보면, 라이프니츠는 2세기씩이나 먼저 위상수학을 예견한 것이다.
패킹에 대한 일화로, 라이프니츠는 그의 친구이자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인 데서 보스에게 원을 하나 그려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안에 접하는 세 개의 합동 원을 최대의 반지름을 가지도록 그리라고 했다. 그러면 이 세 개의 원 사이에 하나의 원을 그릴 수 있고, 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다.
자기 유사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라이프니츠는 유클리드 공리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같은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자연의 본질에 관한 라이프니츠의 생각들은 정역학, 동역학과 잘 들어맞지 않았고, 아원자 입자가 발견되고 양자 역학이 고전 역학을 밀어내기 전까지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그는 뉴턴과의 논쟁에서 공간, 시간과 물체의 운동이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고 말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예견했다.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라이프니츠 법칙도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의 증명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이프니츠는 1671년에 사칙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기 시작했고, 수년에 걸쳐 발전시켜 나갔다. '단계 계산기'라고 불린 이 발명품은 상당한 관심을 끌었고 라이프니츠가 1673년 왕립 협회에 선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받아올림과 받아내림을 완벽하게 자동화시키지는 못했으므로 큰 성공은 아니었다.
라이프니츠의 법률, 윤리, 정치에 관한 저서는 영어권 철학자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간과되어 왔으나, 최근에 바뀌었다. 라이프니츠의 실용적인 발명품들과 공학 연구에 관한 라이프니츠의 저술을 모아 책을 출간했다. 한글로 번역된 저술은 거의 미미하지만, 라이프니츠가 실용적인 삶을 추구한 성실한 발명가, 공학자이자 응용 과학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라이프니츠는 ‘실천을 가진 이론’이라는 좌우명을 따르며,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응용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라이프니츠는 바람을 동력으로 하는 프로펠러, 물 펌프, 채광 기계, 수압 프레스, 등불, 잠수함, 시계 등을 설계했다. 그는 데니스파 핀과 함께 증기 기관도 만들었다. 심지어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1680년부터 1685년까지는, 독일 하르츠 산에 있는 은광을 괴롭혀 온 만성적인 홍수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라이프니츠는 하노버에 몇 년간 머무르면서 많은 수의 유사한 기계들을 만들었다. 쿠튀라는 라이프니츠의 출판되지 않은 1674년 작 원고에서 몇몇 대수적 연산까지도 수행할 수 있는 기계의 묘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라이프니츠는 1679년에 펀치 카드의 초기 형태인 공깃돌로 이진수를 표현하는 방식의 기계를 고안했다. 현대 컴퓨터는 중력에 의해 움직이는 공깃돌을 레지스터와 전위차에 의해 생기는 전자의 흐름으로 대체했지만, 돌아가는 방식은 라이프니츠가 1679년에 상상한 것과 유사하다. 라이프니츠는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 계산과 이상 언어이론은 각각 에스페란토 같은 인공어와 수리논리학을 예견한 것으로 여겨진다.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걸로 유명하다. 그는 "왜 무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그에 대한 답으로 "왜냐하면 무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단순하고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가 사물들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왜 그들이 그렇게 존재해야만 하고 달리 존재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해서 이유를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