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신체론'이 있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의 몸을 현상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데카르트가 주장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했다. 자기 신체가 경험하는 바는 물질도 정신도 아닌, '애매한 존재 방식'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메를로퐁티는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프랑스 현대 철학의 양대 산맥으로,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천착하였고 행동의 구조, 지각의 현상학, 의미와 무의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파리의 리 세 루이르그랑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장 폴 사르트르와 같은 시기 파리 고등사범학교 학생이 되어, 1930년 철학 교수 자격시험을 차석으로 합격했다.
메를로퐁티는 잡지 [현대]가 창간된 1945년 10월부터 장 폴 사르트르와 결별한 1952년 12월까지 그곳의 운영위원 중 하나이자 정치면의 논설 기자였다. 사르트르는 잡지 [현대]에다가 자기 기사, [공산주의자들과 평화]를 누구에게도 통보하지도 않고 실었다. 1950년을 기점으로 사르트르가 취한 태도는 어렵사리 지지받기는 받았으나, 메를로퐁티는 잡지 운영에 있어 사르트르가 마르크스주의 글을 썼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점을 두고, 이 기사는 1952년 12월호에 실린 선행하는 기사가 없이는 실릴 수 없다며 그를 불렀다.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후설의 현상학, 특히 생의 세계에 대한 후기의 사색을 발전시켜 행동의 구조와 지각 세계의 연구로부터 출발하였고 실재론과 관념론의 전제를 모두 배척하고 관념으로도 사물로도 환원할 수 없고 인간적 실재의 이의성(二義性)을 조명하는 동시에 정치·역사·언어·예술 등 제 문제에 독특한 전망을 열려고 하였다.
신체는 세계 안에 존재하지만 그런 수동적인 의미를 초월해 좀 더 적극적인 신체의 의미를 모색한 철학자가 몸의 현상학자로 일컬어지는 메를로퐁티다. 메를로퐁티는 기존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몸과 마음의 관계를 논했다. 메를로퐁티는 또한 의식의 내재성이 있다는 점과 지각의 분석을 가능케 하는 몸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지각의 탁월성은 곧, 지각이 활동적이고 기본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경험의 탁월성을 의미한다.
메를로퐁티는 "몸 자체"가 단지 물체, 과학의 연구 가능한 대상일 뿐만이 아니라, 경험의 지속적인 조건이라는 점, 세상과 자기 투사를 향한 지각의 시작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을 재인식하고자 한다. 신체야말로 우리 인간의 세계, 인간의 의식을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 준다고 생각했다. '환각지'를 예로 들 수 있다. 환각지란 수술이나 사고로 손발을 잃었음에도 마치 건강한 손발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메를로퐁티는 그다음으로 순수 자유와 순수 결정론 사이의 양자택일을, 대자적 육체와 대타 적 육체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세상의 개인들의 생애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메를로퐁티의 연구는 고로, 메를로퐁티가 본인의 사상과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목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육체/정신 범주의 이원론적 존재론과는 대조되는, 의식의 육체성과 육체적 지향성의 재인식으로 상징되는 분석을 창시했다.
[지각의 현상학]이 책은 메를로퐁티의 철학적 주저로, 후의 정치·미술·언어 등 다방면에 걸친 사색은 주로 이 책에 기초를 두었다. 신체는 세계에 상주함으로써 습관적 층(層)을 침전시키고 행동의 자유로운 환경을 주는 것이지만, 예컨대 과거에 손이나 발을 절단한 사람이 상실한 부분에 아직도 통증을 느끼는 환각에 사로잡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습관적 신체는 물리적 실제도 아니고, 또 단순한 관념으로 해소되지도 않는다.
심리학의 경험주의적·주지주의적 제 개념을 비판함으로써 현상적 장(場)으로서의 세계에 되돌아가야 할 필요를 말하고 그 중심인물을 이루는 자기의 신체에 대해 사물이라고도 관념이라고도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 방식을 조명한다.
인간의 세계에 고유한 중후함을 부여하는 것은 해방과 예속·진리와 오류의 가능성을 어느 것이나 나눌 수 없게 내포하고 있는 양의적(兩義的)인 신체의 존재이며, 지각의 해명은 여기에 조명을 비춤으로써 자유 문제만이 아니라 의미의 침전으로서의 문화나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구체적인 취급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각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세계 내에서 대상을 발견하고 또한 타인과 자기를 인식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지각 내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반성은 과학이 항상 전제하면서도 조명하지 못하는 지각적 의식의 원초적 신념이 형성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재발견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을 통한 정신 분석의 일치와 대립의 해석과 특히 심리사회학과 장 피아제의 저서에 관한 평가를 시도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뿌리와 더 나아가 상호주관성의 분석을 하고자, 메를로퐁티는 사회학적, 인간학적 연구의 본성, 특히 철학과 [사회학과 마우스부터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까지]에 실린 논문들에 대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지각의 탁월함과 살아있는 몸에 관한 메를로퐁티의 논문들은 상호주관성의 혁신적인 이해를 가져왔다. '섕크 빅 투 아르 산'의 모습을 변주해 여러 편을 화폭에 옮긴 폴 세잔의 풍경화에서 예술의 본질을 포착하려 했는데, '폴 세잔의 작품은 끊임없이 그 심층부를 파면서 사물들의 흥분되고 불가해한 발생을 회복시키려 한다'며 '예술이 사유에 이를 수 있는 표현이나 언어라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던 작가'로 폴 세잔을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