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세트는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전공한 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로 유학을 가 헤르만 코헨, 빌헬름 분트, 게오르크 지멜 등에 가르침을 받았으며,
헤르만 코헨의 신 칸트 철학과 파울 나토르프에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스페인의 철학자이다.
'생의 철학'은 크게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 생의 철학'과 '관념주의적(觀念主義的) 생의 철학'으로 나뉠 수 있는데,
그의 철학은 정신적인 삶의 힘을 강조하는 관념주의적으로 가깝다.
빌헬름 딜타이, 프리드리히 니체의 계통을 잇는 '생의 철학'에 근원을 두었으며,
프리드리히 니체와 현재의 실존주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철학자로서 사상은 관념주의적 '생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대중의 봉기]가 있으며 스페인 문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1883.5.6 마드리드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El Imparcial 신문의 임원이었다.
그의 가족은 진보적이고 교육받은 부르주아로써 오르테가의 행동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현대 예술을 연구해보려는 시도에서 쓰인 글이다.
도덕관념이 시대에 따라 변하듯이 예술 경향도 시대적 질서에 순응하여 변화해 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인간적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신예술의 경향이 바로 오르테가가 말하는 예술의 비인간화이다.
오르테가는 근본 실재로서 인간의 삶은 ‘우리가 지금 행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네 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 속성은 개인적이고, 환경적이고, 양도 불가능하고, 책임 있다.
오르테가의 인간을 교육과 관련지어 보면,
그가 바라는 진정한 교육은 교육받는 학생이 그의 삶에서 진실로 바라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즉 교육받는
학생에게 외적인 필요에 따라 교육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하고
생생한 욕망과 필요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또한 오르테가는 특히 창조적인 개인을 길러내는 교육을 강조한다.
오르테가에 의하면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인간은 드라마이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 세계를 인간화한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간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적 조형 자이다. 인간은 자유롭고 창조적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내면세계를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이 인간은 삶의 시간적 차원인 역사와 공간적 차원인 세계 속에서 타자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오르테가 철학의 근본원리는 ‘삶’에 있다. 즉 ‘삶’ 특히 ‘인감의 삶’만이 근본 실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따르면 물리학의 실재(reality)인 물질이나 수학에서의 실재의 수,
실재론에서의 실재인 사물이나 관념론에서의 실재인 자아(ego)도 근본 실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실재들이 근본 실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실재들보다도 우선해야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삶보다 우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 실재인 ‘삶’은 다른 실재들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며 그 뿌리를 결국 인간의 삶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오르테가의 철학은 근본 실재인 ‘삶’을 간과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교육하고 있지 못한 오늘 우리 상황을 일깨우고,
우리에게 ‘여기’ 그리고 ‘지금’ 인간 삶의 근본적 목표를 추구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1908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마드리드에서 논리학과 윤리 교육을 가르치다가
1910년 27세의 나이로 마드리드 대학교 형이상학 정교수로 취임한다.
《낙원의 아담》 (1910), 《돈키호테의 성찰》 (1914),
《현대의 주요 문제》 (1923) 등의 저작을 발표하고 이쯤에서 신칸트학파와 결별하였다.
오르테가에 의하면 평균인 대중(平均人大衆)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지만,
원래 비속하고 나태한 대중은 조리 있는 교섭에 의해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싫어해서
성급하게 폭력과 직접행동에 호소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단지 정치상의 위험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인격적 가치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므로
본래의 지배적 권위의 소유자인 엘리트(選良)의 지배권을 회복하여 대중에게
그들의 지도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1910년 형이상학 교수로 취임한 이후부터 왕성한 평론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주재지(主宰誌) 『서유럽 평론』(Re vista de Occident)은 스페인 문화권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동시대 유럽 정치 상황을 비판하고 당대의 사회상을 나타낸
『대중의 봉기』는 20세기 스페인의 문화와 문학의 부흥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30년 현대 스페인의 생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문화 철학상 주저로서
대중사회론의 개척자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 의해 그의 명성은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에스파냐》 (1915), 《솔》 (1917), [레비스타 데 옥시 텐데](1923) 등의 정기 간행물을 발간했다.
1931년 스페인 공화국 성립 시에 제헌의회의 대의사(代議士)로 선출되지만, 정치에 곧 실망하고 포기한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과 함께 자진 망명(프랑스,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에 체류)하였다가
제 2차 세계대전 말에 스페인으로 1945년 귀국하였다.
1948년에 마드리드로 돌아와 인문학 연구소를 세웠으며 7년 뒤인 1955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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