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에드문트 후설

laura-tiki 2022. 6. 30. 22:45

색다른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싶다면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 개념이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가 사물이나 세계의 존재를 미리 확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평소의 경험이 초래하는 습관과 같은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자연적 태도'라고 표현한다. 참된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태도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필요한 관점이 '초월적 태도'이다.

 

 

 

 

 

 

 

 

 

 

 

 

에드문트 후설 현대철학의 주요 사상 가운데 하나인 현상학의 체계를 놓은 철학자이다. 그는 심리주의와 역사주의에 대한 비평을 통해 실증주의와 결별하였다.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은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후설은 1901년 논리 연구를 출간하여 현상학을 개척하였다. 이후 프라이부르크에 재직하는 동안 현상학은 그의 주된 연구 대상이었다. 1933년 후설은 나치의 반유대주의로 인해 대학교의 도서관 출입이 금지되었다.

 

 

 

 

 

 

 

 

 

 

 

 

 

 

 

 

 

 

 

 

그의 제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가 이러한 반유대주의에 가담하였다는 소문이 있으나 하이데거 본인은 이는 중상모략이라며 부정하였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나치 치하였던 1941년, 자신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후설에게 헌정한다는 문구를 삭제하였다. 후설은 현상학이 방법 자체가 아니라 엄밀한 학문, 제1 철학, 모든 원리 중의 원리가 되고자 하였다.

 

 

 

 

 

 

 

 

 

 

 

 

 

 

후설은 인간의 의식에 드러나는 그대로의 "현상"을 기술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철학적 방법은 현상학이라 불리게 되었다. 자연적 태도에서 초월적 태도로 이행하는 태도의 변화가 '현상학적 환원'이다. 현상학적 환원에 따라 모든 경험적인 것을 배제하고서도 남는 것은 '순수 의식'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은 독일에서 태어나 할레 대학교의 강사, 괴팅겐 대학교의 강사와 교수,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교수를 거쳐 은퇴 후 오히려 더욱 왕성한 의욕과 새로운 각오로 연구와 강연에 매진하면서 죽는 날까지, “철학자로 살아왔고 철학자로 죽고 싶다”는 자신의 유언 그대로, 진지한 초심자의 자세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수행한 말 그대로 ‘철학자’ 자체였다.

 

 

 

 

 

 

 

 

 

 

 

 

 

 

 

 

그는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실증주의를 공격하여 그것이 참된 의미의 객관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이러한 실증주의 비판을 통해 후설이 제창한 철학을 현상학이라 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급속하게 발전한 과학 기술은 전통적으로 철학의 영역이라 여겨지고 있었던 분야들을 자신의 범주로 포함했다. 특히 심리학의 형성과 발전은 인지, 정신과 같은 철학 본원의 영역으로 인정받던 분야 역시 과학의 탐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과학의 거센 도전을 맞은 철학은 영국, 미국의 철학과 같이 보다 과학 쪽으로 다가가거나, 리케르트와 같은 신칸트주의에서처럼 과학과 철학을 별개의 학문으로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현상학은 의식의 본질에 관한 학문이자, 의식 전체 영역의 본질 분석을 철학 과제로 삼고 있다. 후설은 의식에 주어지는 다양한 체험의 본질 그대로 파악하기 위한 작용을 '본질 직관'이라고 한다. 경험적인 사실과 관련된 '경험적 직관'과 본질 직관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후설은 실증주의가 의식과 대상을 실체적으로 분리해 사고하는 것이 철학적 오류라 비평하였다. 후설은 우리의 의식은 항상 어떤 무엇을 향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대상 역시 의식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대상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후설의 이러한 주장을 "의식의 지향성"이라고 한다. 이는 후설 철학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후설은 1876년에서 1878년까지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한 후 1878년 베를린으로 가 1881년까지 수학, 물리학, 천문학, 철학을 공부한다.

 

 

 

 

 

 

 

 

 

 

 

 

 

 

 

 

 

 

 

 

 

 

후설은 다시 빈으로 거처를 옮겨 1882년까지 프란츠 브렌타노 밑에서 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1883년 수학과에서 편차 계산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886년까지 브렌타노 밑에서 계속 철학 연구에 열중한다. 빌헬름 분트 실험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을 과학적인 실험의 대상으로 다루었다.

 

 

 

 

 

 

 

 

 

 

 

 

 

 

 

 

 

 

그는 이에 따라 종종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분트에 의해 시작된 실험 심리학은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에 따라 "심리학이 모든 과학의 근원"이라는 믿음인 심리학 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다. 후설은 그의 저서 논리 연구에서 경험주의에 입각한 과학적 방법론이 언제나 반박될 수 있는 귀납적 사례들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점을 들어 심리학 주의를 비판하였다. 후설은 철학을 과학보다 엄밀한 학문으로서 자리를 잡게 하고자 하였다. 1887년에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적 분석논문으로 후설은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이후 할레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전임강사로 취직하면서 같은 해에 말비네 쉬타인쉬나이더와 결혼한다.

 

 

 

 

 

 

 

 

 

 

 

 

 

 

 

 

 

후설은 '에포케'라는 개념 현상학이라는 학문의 탐구 방법으로 사용했다. 에포케란 '중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 말로, 에포케 상태에서는 객관적인 진리 대신 주관적인 진리를 기술할 수 없고, 오히려 객관적 진리의 근원적 의미를 묻는 방법이 에포케라고 의미했다. 단순한 습관에 바탕을 두고 판단을 내린다면 참된 본질을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판단 중지', '에포케'이다. 에포케는 판단의 멈춤이지, 판단의 포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1938년 후설은 사망하였으며 1년 뒤인 1939년 4만여 쪽에 달하는 그의 전집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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