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공통 집필한 제국이라는 사상서다. 이 책은 2000년에 출간된 21세기 최초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명저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윤리·정치 철학자이다. 제국주의의 제국과 오늘날 제국의 차이점을 좀 더 자세히 알면, 제국주의란 중심이 되는 강대국이 영토적 지배력을 확대해 나가는 일련의 사태를 지칭한다.
네그리가 주장하는 제국이란 중심이 되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초국가적인 제도나 자본주의 아래의 다국적 기업과 지배적인 국가군이 서로 얽혀 이루어진 네트워크 형태의 권력을 형성한다. 2004년 간행된 [다중]과 함께 [제국]에서 제기되었던 많은 내용이 현재 전 지구적이며 격렬한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미셸 푸코나 데이비드 허비의 탈근대성의 조건, 프레더릭 제임슨의 탈근대주의 또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 그리고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카리의 자본주의와 분열증 천 개의 고원 등으로부터의 영향을 인정하지만 [제국]은 상당 부분 전 지구화와 탈근대에 대한 연구에서 독창적 기여를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는 여기서 주권 형태의 변화 및 자본과 노동의 재배치를 다루는데, 여기서 이 모든 변화의 원동력을 프롤레타리아의 활력에서 찾고 있다.
논쟁은 전 지구적인 주권 구성체인 제국의 실존 여부와 노동의 재배치 및 재구성, 다중의 개념 등에 맞추어져 있다. 제국은 전 지구적인 주권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2001년 이후 이라크 침공을 놓고 벌어진 유럽과 미국 간의 실랑이 및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같은 제국주의 시대와 흡사하며 서로 전쟁을 벌일 수도 있을 만큼 분리된 주권을 시사하는 현상을 제국이 설명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다.
노동의 재배치 경우 산업 노동의 축소와 비물질적 노동의 확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네그리는 모든 노동 속에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과 협동이 내재하게 된 것을 강조하며 여기서 초보적인 코뮤니즘의 잠재성을 발견하는데, 이 내재성은 산업 자체에 내재하게 된 것이지 노동과정 안으로까지 직접 들어오지 못한 현장도 존재한다는 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네그리는 이에 대해 코뮤니즘의 잠재성이 특히 지식노동자 및 다양한 종류의 비물질적 노동자에게 직접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오늘날 알맞은 혁명이 가능하다고 응수한다. 다중의 개념 역시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에 네그리는 정치적 계급은 계급의식에 의해 주관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응수한다.
네그리의 작업의 핵심적 주제는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반자본주의, 공공적인 것, 마르크스주의, 민주주의적 세계화, 다중 등이다. 그가 매우 풍부하고 참신하며 도그마를 파괴하는 작업은 전 지구적인 좌파적 지적 운동에서 새로운 중요한 원천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는 1978년 있었던 이탈리아 기민당의 수장인 알도 모로의 암살 사건을 주도한 붉은 여단과 노동자의 자율 수괴로 기소되어 1979년 4월에 체포되었다. 1983년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파리 8대학과 국제 철학 대학에서 활동했으며 망명기를 비롯한 많은 시기 동안 당시 프랑스의 학자들과 교류하거나 공동으로 작업했다. 그의 제자인 마이클 하트와 함께 쓴 《제국》과 그의 스피노자에 대한 독해로 유명하다.
그는 북부 이탈리아의 파도바 출신이며 바로 파도바 대학에서 학위와 교수직을 모두 얻었다. 네그리는 1969년에 창설된 노동자의 힘과 1973년 그것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노동자의 자율 창립 멤버였으며,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네그리는 정치, 군사, 경제 네트워크가 지구를 장악해 나가는 양상을 '제국'이라고 표현하고 제국의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대중을 뛰어넘는 '다중'의 개념을 제시한다.
다중이란 통일되지 않고, 복수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새로운 정치 주체로서의 존재를 일컫는데, 다중의 모습은 세계화의 본질인 제국의 권력 구조를 분석할 때 저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네그리는 산업 노동에서 지식과 정서가 중심 역할을 하는 교육, 엔터테인먼트 노동, 금융, '비물질적 노동'으로의 이행을 강조한다.
60년대 초기의 저항운동에서부터 1973년까지 이뤄진 아우 토 노 미아 운동의 초반부는 세 가지 국면으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1969년 피아트 자동차 공장 사건까지가 첫 국면인데 여기서 네그리는 자율주의적 운동의 가능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대중과 전위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운동의 자발성이 돋보이는 상황이었다. 이후 1972년까지 진행된 국면은 봉기 과정에 대하여 전략적 의지가 개입되는 상황이었는데, 테러리즘에 호소하는 붉은 여단의 등장, 여타의 정치조직에서 확산하였던 수직적 위계 속에서의 지도의 동질성과 이데올로기적 응집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는 시기였다고 네그리는 평가한다. 네그리의 영향력은 당연하게도 90년대에 사회 표면으로 부상한 이탈리아 자율 주의 운동과 그 이론에서 두드러진다.
지금도 확산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회적 센터" 운동은 네그리의 영향을 받은 여러 단체와 잡지들에 의해 지지가 되고 있다. 네그리의 사상은 영국으로도 파급되었다. 〈자본과 계급〉을 비롯한 좌파 전통의 흐름을 잇는 전복, 지양, 적대 등의 잡지의 기조도 네그리의 자율 주의에 대한 공명임을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의 자율 주의 사상은 마이클 하트, 조지 카 치아 피 카스 등을 통해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이외도 지구 곳곳에서 자율 주의 사상은 부단히 전파되어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