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의 '질적 공리주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쾌락에도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를 생각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의 사회학자,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로서, 윤리학, 논리학, 정치학, 사회평론 등에 걸쳐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밀은 "어떤 쾌락이 다른 쾌락보다 한층 바람직하고 한층 가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도, 공리의 원칙과는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인간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공리주의의 장점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1823년 친구들과 함께 공리주의자 협회를 만들었다. 밀은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잉글랜드 국가교회인 잉글랜드 성공회 신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1858년까지 35년 동안 근무하면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밀이 인간의 개성을 중시하고 동물의 쾌락과 인간의 쾌락을 질적으로 구분한 데 있어, 아버지인 제임스 밀로부터 받은 엘리트 교육이 크게 작용했다. 밀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역사가이자 경제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1818년에 영국령 인도의 역사를 출판하는데, 그즈음에 열두 살이 된 존 밀은 스콜라철학의 논리학을 치밀하게 공부하는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들을 원전으로 읽었다. 이듬해에는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하여,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공부했다.
이는 자본, 노동, 토지를 생산의 3요소로 바라보는 고전 경제학의 시각이 밀 부자에 의해 완성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버지 밀은 산책 시간을 이용해서 아들에게 정치경제학을 강의했고, 아들은 배운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제출하여 교정받았는데, 이 원고는 후일 아버지 밀이 출판한 '정치경제학 요론'의 초고가 되었다.
리카도 경제학을 충실하게 답습한 교과서로서 당대를 풍미했다. 리카도는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로, 소년 존을 자주 집으로 불러서 함께 산책하면서 정치경제학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밀은 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밀은 사회 전체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간섭이 전혀 없을 수 없다고 말한다.
국가가 관여할 수 있는 정당한 간섭의 기준을 지시했는데, 그 기준이 바로 '위해 원칙'이다. 표현의 자유가 진보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공론의 여과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의견이 진실로 틀렸거나 해롭다면 공론장에서 자연히 틀렸거나 해로운 것으로 판명이 나서 도태되리라는 말이다. 밀은 정부를 전복하려는 기획이나 살인을 정당화하는 이론일지라도 표현에 사회적 박해나 정치적 탄압이 가해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 전복이 진실로 필요하다면 전복해야 할 것이고, 살인이 진실로 정당하다면 용인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단, 의견을 공표하는 방식은 대중연설이나 저술이어야지 다른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이것을 일컬어 '위해 원칙'이라고 하는데, 예컨대 굶주림에 시달려 흥분한 상태의 군중을 상대로 곡물 도매상을 지목하면서 "여러분이 굶주리는 것은 저런 자들의 착취 때문"이라는 식의 표현은 안 된다는 것이다.
밀의 [자유론]은 자유주의 정치이론, 또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고전 중 하나로, 자유의 개념을 주제로 저술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대중적인 문서 중 하나이다. "틀렸다거나 해롭다는 이유로 의견의 표명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 "표현의 자유를 일부만 제한하게 되면 곧 모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만다",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어야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표현하는 내용에는 제한이 없어야 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에는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이 주장하는 핵심 내용이다.
오늘날 영국을 비롯한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정치원리로 받아들여져, 표현의 자유는 시민의 기본권으로서 포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울러 [자유론]은 영어 산문의 고전으로서 영어권 사회의 대학에서 정치학뿐만 아니라 영문학의 교재로도 아직 널리 읽히고 있다.
그의 공론 주의는 영국인의 삶의 큰 영향을 끼쳤다. 스코토 옥소니안 헤이글(Scoto Oxonian Hegel)이 세분화하여 공론 주의를 완벽하게 정의할 때까지 그의 이론은 영국 철학자들이 공론 주의를 윤곽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쉽게 말해서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한, 무슨 일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뜻이다. 위해 원칙을 뒤집어 말하면, '자유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중요 저서인 논리학 체계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베이컨이 이룩한 귀납법의 논리를 완성한 것으로 진보가 빠르고 가장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자연 과학 연구의 방법론으로서 획기적인 저술이었다.
생시몽은 산업노동자들을 찬양했던 프랑스의 이상주의자였다. 대다수 경제학자는 미래를 장기적으로 전망하고픈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 생시몽의 분석에서 밝을 미래를 본 밀은 정체상태 역시 행복한 상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인류는 더 이상 돈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며 부유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정체상태라는 이론적 모형에서 리카도는 수확체감, 시장철폐, 이윤감소 등을 보았던 반면, 밀은 지상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신학적 주제들을 보았다. 밀이 개량한 공리주의에는 플라톤식 이상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밀은 인간이 당좌차월이나 잔업 근무 같은 것보다 존엄, 고결, 정의 같은 가치에 더 관심을 기울일 날이 오기를 갈망했다. 생시몽과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밀 역시 인간이 점차 '필요의 단계'를 초월하여 그저 생계를 잇기 위한 삶으로부터 인간성의 고취를 위한 삶으로 진보해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더 이상의 경제성장이 있어야 하는 국가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후진국들뿐이다. 선진 공업국들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합리적 분배와 건전한 사회기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