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이든지 알아낼 수 있는지 이마누엘 칸트는 이 질문에 겸허한 자세로 앎에 대해 고찰했다.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의 문제를 진중하게 생각하는 철학 영역을 '인식론'이라고 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간 인식에 선험적 형식을 도입하는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하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인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대상의 관념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대상이 있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 대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진리는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하는 무엇이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사고는 '직관'을 통해 생겨나고, 직관이란 대상이 부여하는 한계에서 생긴다.
대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의식을 촉발함으로써 직관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18세기 철학의 인식론은 크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로 나뉘었다. 여기서 합리주의는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선험적 이성을 중시하였고, 경험주의는 인간이 경험함으로써 지식을 얻는 귀납법을 중시하였다.
합리주의의 방식은 "백마는 희다"와 같이 술어가 주어의 개념에 이미 포함된 분석판단을 하므로,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경험주의의 방식은 귀납적인 방법을 강조하며 종합판단을 한 나머지 진리의 필연성을 찾는 데 한계를 드러내었다.
칸트는 이 두 사상을 통합한 선험주의를 주장하였다. 즉,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식을 확장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을 긍정하였다. 대상이 마음속에서 형태를 드러내는 것, 즉 표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감성'이라고 한다. 감성이 우리에게 직관을 부여하는 셈이다.
오성이란 감성이 부여한 감각 자료를 바탕으로 대상을 구성하는 힘, 사물을 이해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일컫는다.
칸트의 인식론은 감성을 통해 얻은 감각을 범주를 사용하여 오성으로 인식하고, 초 경험적인 것은 이성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감성은 어떤 물 자체를 지각하는 능력이며, 범주는 이러한 감각을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틀이다. 따라서 감성과 지성은 인간이 지각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건인 셈이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데 시간과 공간 값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연장과 존재하는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인식을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감정과 같은 것은 공간 값은 없지만 시간 값만 있는 것으로 보았다. 칸트는 18세기 철학에 있어 가장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칸트 이전의 철학과 이후의 철학은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칸트가 초감각적인 세계를 논하는 기존의 형이상학과는 다른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의 체계를 세우려고 했으며, 그러한 체계의 근거가 되는 인식론을 연구하여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두 사상의 한계에서 벗어난 철학을 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은 인식론에 근거를 두고 이성이 이성 자신을 비판하는 철학이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로 한정된다. 공간적, 시간상으로 규정된 물질이나 사물에만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를 칸트는 '현상계'라고 자칭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 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칸트는 무엇보다 자율적인 의지를 강조했다. 바른 판단을 내리고 참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인격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옳은 일은 무조건적인 의무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고, 조건을 붙이지 않고 '~하라'고 확정해서 말한 '정언명령'이다. 칸트는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의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어떤 결과를 얻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으로서 명령’이 아니라, 명령 그 자체가 목적인 ‘무조건적인 명령’을 도덕법칙으로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적인 가언명령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의무로서 명령인 정언명령을 내세운 것이다.
칸트는 정언명령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이 항상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보편적인 원칙이 되게끔 행동하라"라고 말했다. 칸트는 윤리학을 연구하면서 주관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는’ 도덕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을 추구하였다.
모두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을 도덕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칸트는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선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은 마음속에서 충동과 도덕이 투쟁한다고 보았다. 즉, 옳고 그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충동과 도덕심이 투쟁하며, 도덕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고 충동이 이기면 그른 일을 하게 된다고 보았으며, 그렇다고 도덕이 충동을 없애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칸트의 생각은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이후에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친 학파들에 드러나고 있다. 현상학, 비판이론, 구조주의, 실증주의, 언어철학, 해체주의, 독일 관념론, 후기구조주의, 실존주의가 그러한 예이다.
칸트의 영향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에서도 나타나는데, 막스 베버의 사회학과 노암 촘스키의 언어학, 그리고 장 피아제의 심리학을 예로 들 수 있다. 칸트가 패러다임을 철저하게 바꾸었기 때문에, 특별히 칸트의 저서나 칸트의 용어를 언급하지 않는 학자들까지도 칸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칸트는 실천 이성에 기초한 선의지를 전제로 할 때, 인류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도덕적 실천 과제로 '영구 평화론'을 주장했다. 칸트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철학 연구가 칸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철학의 틀 구조를 바꾸었다. 달리 말하면, 그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었다. 이러한 전환은 공리주의에서 후기 칸트 학파의 사상에 이르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로 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 모두에서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