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는 수감 기간 중 역사와 정치 분석을 기록한 공책을 30개 이상 남겼다.
이 글은 감옥에서 공책에 쓴 글이라는 뜻으로[옥중수고](Prison Notebook)라고 알려졌으며
그람시의 이탈리아 역사와 국민주의 그리고 그람시의 것으로 인식되는 비판적 이론,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교육 이론 등이 담겨 있다. 파시즘에 대한
그들의 대체적인 태도는 반동적 부르주아 운동의 또 다른 운동에 불과하다고 보며
파시즘 운동의 광범위한 대중적으로 지지라는 면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람시는 파시즘을 자유주의적 학자들처럼 단순히 서구 문명의 일탈로 보는 것도 아니고
독점 자본주의의 극단적 지배 형태로 보는 것도 아니다.
사회주의 운동을 지지해야 할 프티 부르주아(소시민)와 노동자 계급조차도 파시즘을 지지했다는 점은
정통적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문제였다. 그람시는 비결정 주의적 역사관을 지향했다.
역사와 사회의 변화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법칙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참가하는 인간의 투쟁, 의지, 참여를 통해 결정되는 것.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미래가 그때그때 인간 자의에 의해 결정되는 우연의 연속이라고 본 것은 아니다.
기본적 지향은 사회주의이나 그것의 필연적 승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에 대해 양쪽 모두를 비판한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학자는 1871년 파리 꼼뮨을 전후한 혁명적 노동운동을 보면서
그러한 것을 자본주의의 몰락의 징조로 보았으며, 레닌은 제1차 세계 대전을 보면서
자본주의 몰락의 징조를 발견하였음에 반해 그람시는 1871년 이후 혼란 속에서
자본주의가 벗어나 안정화되고 확산하여가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았다.
그람시는 상부구조의 중요성, 특히나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대중적으로 지지를 얻으며 안정화되어가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림시의 이론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또 한 번 전도시켰다고까지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옥중수고》는 그람시가 옥중에서 공책에 쓴 책이다.
그람시의 중요한 이론적 관심사는 자본주의 국가의 내구성과 안정성의 원인과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당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혁명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안정화되는 것에 대해 탐구했다는 점에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차이를 보인다.
그람시나 루카치에게는 물적 토대에 대한 분석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 의식,
국가와 같은 상부구조가 더 관심사였다. 그래서 그들을 "상부구조의 이론가"라고 부른다.
더욱 중요한 차별성의 하나는, 고전적 정치경제학자가 빠지기 쉬운
경제적/기계 주의적 위험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관념보다는 물질,
상부구조보다는 하부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헤겔을 전도시켰다면,
그람시는 상부구조를 강조하고 그 자율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물적 토대의 기초를 떠나서는 그러한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절대적 자율성이 아니라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틀을 벗어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를 보완,
확장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기능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훨씬 더 확장,
발전, 성숙하여 가고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가 경쟁적 자본주의에서
독점적 자본주의로 발전해가면서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확대되어 갔다고 보았다.
경찰국가가 아니라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이 "국가독점자본주의"이다.
마르크스 시대의 국가는 경쟁적 자본주의 시대의 국가로 시장 질서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으면서
기본적 질서만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국가라는 것은 공적 영역의 대표이며
시민사회는 사적인 영역의 대표이다.
그람시는 시민사회에서 형성된 질서가 국가를 매개로 공식화된다고 보았다.
즉 시민사회가 국가영역을 지배한다고 본 것이다. 국가기능이 점차 확대되면서
시민사회는 국가의 사적 네트워크가 된다.
그 시민사회를 통해 국가는 모든 의식과 조직에 침투할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며,
그런 속에서 국가는 통합국가일 수밖에 없다. 강제 측면을 담당하는 부분은 정치사회이고,
동의를 창출하는 부분은 시민사회이다. 그람시의 국가는 "정치사회(강제)+시민사회(동의)"이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계급동맹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에게 헤게모니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런 헤게모니를 그람시는 새롭게 해석했다.
계급적 동맹의 원칙의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유형의
지배 질서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확장하게 시킨 것이다.
이데올로기 매개로 기본적 집단과 추종 집단이 융합되는 것이다. 그람시의 공로라고 한다면,
1920년대, 30년대에 정통적 마르크스주의들의 논리의 밑바탕에서 깔린
경제주의적 해석을 극복하려고 했던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다.
경제주의적 해석의 특징은 환원주의와 반영 주의이다.
그람시는 지식인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했다. 전통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이다.
지식인이란, 인간 의식, 관념, 사상 등의 상부구조 영역을 담당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모든 지식인은 어떤 형태로든지 "계급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새로운 하부구조가 형성될 때에는그것을 옹호하고 전파하는 그들 나름의 지식인 계급을 배출시키고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보면 모든 지식인은 자신들이 속한 계급이 가진 집단의지를 결집/확산시키는
특수한 성격의 집단이고 이것이 바로 유기적 지식인이다.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 그룹의 총체가 "당"이라고 봄으로써 당의 지도적 역할을 인정한다.
기본적으로 레닌주의적 전통 속에 서구사회의 독자성을 추구하면서도
레닌주의의 틀 속에서 그것을 추구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