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생에 대해 남겨진 기록은 얼마 되지 않으나 고전 고대의 대표적인 수학자, 과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물리학 분야에서 정역학과 유체정역학을 연구했으며 지레의 원리를 설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아르키메데스는 아르키메데스 나선양수기, 해상에 있는 배를 공격하기 위한 거울 등의 기계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아르키메데스는 고대 그리스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일부였던 시라쿠사 출신의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겸 공학자, 철학자이다. 아르키메데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의 출생지와 죽음 이외에 알려진 사실이 그리 많지 않다. 발견의 기쁨에 벌거벗고 거리를 달렸다는 것 같은 아르키메데스와 관련한 많은 일화는 후대에 각색된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을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여겼고 특히 구에 대한 자신의 발견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아르키메데스가 제작한 기계들은 대부분 그의 고향인 시라쿠사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 시라쿠사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선박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가장 큰 수송선이었다.
아테나에우스에 따르면 시라쿠사에는 정원과 아프로디테 신전이 딸려 있었으며 600여 명이 승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배 밑바닥에 물이 차면 아르키메데스 나선양수기를 이용하여 배출하였다. 속이 빈 긴 원기둥에 회전축을 두고 나선을 붙인 아르키메데스 나선양수기는 회전축을 돌려 물을 퍼 올리는 기구이다.
이 양수기는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 1839년 건조된 세계 최초의 프로펠러 추진 방식의 증기선은 아르키메데스의 업적을 기려 아르키메데스로 명명되었다. 아르키메데스는 고전 고대 시기의 가장 뛰어난 수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수학과 관련한 아르키메데스의 업적으로는 십진법의 도입, 포물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 계산, 원주율의 계산과 같은 것들이 있다.
아르키메데스 열선이라고도 불리는 이 무기는 햇볕을 한데 모아 불을 붙이는 기구였다. 이러한 무기로 공격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논란이 되었다. 르네 데카르트는 실제 그런 무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여겼지만 근대에 들어 존 웨슬리 등은 당시에도 그런 무기의 제작이 가능하였을 것이란 의견을 피력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였던 트랄레스의 안테미우스는 아르키메데스가 사용한 무기가 일종의 화경이었다고 언급하였다. 구리나 청동으로 제작된 거울을 포물면 반사판과 같이 배치하여 초점 거리를 적절히 조정하면 실제 불을 붙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태양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1973년 그리스의 과학자 로아니스 사카스는 실제 실험을 통해 아르키메데스 거울을 재현하였다. 아르키메데스가 이러한 무기를 실제로 제작하여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수학과 교수인 셔먼 스타인은 아르키메데스의 거울 무기는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무기가 선박을 향한 공격에 효과적이었다면 후대에 다른 전투에서도 사용되었을 것인데 그러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르키메데스 이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학파에서 연구하였던 아르키타스 등이 지레의 원리를 연구하였다. 아르키메데스는 [평면의 균형]에서 지레의 여러 원리를 밝혔다. 플루타르코스는 아르키메데스가 복합 도르래와 지레를 이용하여 배에서 무거운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외에도 아르키메데스는 사거리의 조정이 가능한 투석기와 주행거리계를 제작하였다. 톱니바퀴를 이용한 주행거리계는 오늘날 자동차에서도 사용된다. 키케로의 설명은 플라네타륨이나 태양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리아의 파포스는 아르키메데스의 저작 《구체에 대해》에서 이러한 기계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르키메데스의 이 저작은 소실되었다. 근대에 발견된 고대 안티키테라 기계는 차동 톱니바퀴를 사용한 일종의 계산기로 추정되고 있는데, 키케로가 언급하고 있는 천체 모형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었을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겼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책에서 “아르키메데스는 저급한 삶의 욕구에서 비롯되지 않은 순수한 사색에 모든 역량과 야망을 쏟아 부었다.”라고 평했다. 다른 학자들의 언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저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알렉산드리아의 파포스는 아르키메데스가 [구의 제작에 대해]와 다른 다면체에 대한 저서를 남겼다고 언급하였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아르키메데스의 저작이 근대에 다시 발견된 경우도 있다. 1906년 덴마크의 수학 학자 하이베르고는 이스탄불에서 [부체(浮體)에 대하여]와 같은 글이 수록된 아르키메데스의 저서 [수학 정리의 방법]을 발견하였다. 이 저서는 다시 사라졌다가 1998년 10월 29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경매에 붙여졌다.
동방 정교회가 약탈 문화재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미국 법원은 이를 기각하였고 익명의 수집가가 소유하게 되었다. 이 저서는 몇 차례 소유주가 바뀐 뒤 1999년 2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남긴 말로 유명한 “내 원을 건드리지마”는 후대에 누군가가 지어낸 것으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폴리비오스는 《세계 역사》에서 시라쿠사 공방전과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을 언급하였다. 플루타르코스와 티투스 리비우스의 저서를 바탕으로 폴리비오스는 아르키메데스가 도시 방어를 위해 여러 가지 기계를 제작한 기술자였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