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제크는 정치학, 정신분석학, 철학에서 다른 사상가의 영향을 받았다. 철학에서는 헤겔, 정치학에서는 마르크스, 정신분석학에서는 라캉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우선 헤겔의 철학은 지제크의 사유 방법에 일정한 형태를 부여했고, 마르크스의 저작은 이론의 차원을 넘어서서 실천적 동기와 근거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지제크의 사용하는 분석 용어와 개념적 틀을 제공했다. 슬라보예 지제크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대륙철학자이자 마르크스, 헤겔, 자크 라캉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비판이론가이다. 그는 정치이론, 영화이론, 이론 정신분석학에 공헌을 해왔다. 지제크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는 사상과들과 대립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체를 해체함으로써 저항의 거점 또한 해체했다는 이유에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데카르트의 코기토로 대변되는 주체가 인간을 해방하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과 구속에 빠뜨렸다 말하지만, 지제크가 보기에 근대적 주체의 극복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지제크는 그들 나름의 성과를 보존하며 저항과 혁명의 주체를 새롭게 되살리려 시도했다. 지제크는 근대철학이 상정했던 자기 완결적이고 충만한 주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주체란 균열, 틈새, 단절을 내장한, 내적 불화를 겪는 주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주체는 말 그대로 “까다로운 주체”이다. 하지만 이 주체는 자신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위를 책임지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입론에 기대어 지제크는 세계 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행동의 주체를 불러일으킨다.
지제크는 코기토로 대변되는 자기 완결적인 근대의 주체도 아닌, 완전히 해체되어 버려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체도 아닌 역동적이며 저항적인 주체를 새로 확립하려 하였다. 지제크는 라캉 주의 정신분석학을 대중화시켰다는 공로로 칭송된다. 또한 그에게는 라캉 해설가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보통 정신분석학은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론과 심적 과정에 대한 이론들을 포함하는 지적 영역으로 협소하게 이해되었으나 라캉 이후로 정신분석학은 보다 광의의 영역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제크는 라캉의 개념을 나름대로 받아들여 전유시킨다.
라캉은 지제크에게 분석체계와 개념용어를 제공했다. 특히 상징계와 실재계 개념으로 지제크는 세계를 풀어낸다. 현재 지제크는 '경제의 정치화'를 주장한다. 그는 후기 정치학(post-politics)에 대한 균형 세력으로 정치의 정치화에 찬성한다. 민주적인 맥락을 만들어내는 정치적 결정의 영역에서 지제크는 양당제를 비판한다.
양당제는 후기 정치학 시대에 일부 국가에서 지배적인 정치형태이다. 또한 이는 선택의 가능성이 명시적으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형태로 존재한다. 즉 양당제는 실제로 정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로막는다.
지제크는 강고한 무신론자이다. 2006년 지제크는 뉴욕타임스에 ‘무신론은 유럽의 위대한 전통’이라며 기고했다. 그리고 유럽 대륙에서 무신론이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그의 지지를 표명했다. 또한 지제크는 종교 타파를 주장하며 “교회는 곡물 저장고나 문화의 전당으로 바뀌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언명은 지제크가 하는 습관적인 농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지제크는 [꼭두각시와 난쟁이] (The Puppet and the Dwarf), [믿음에 대하여], [깨지기 쉬운 절대성]과 같은 신학적, 종교적인 것들을 재해석하는 많은 글을 써왔다. 사회는 사실 쉽게 계급에 의해서 나뉘지 않고 그러므로 계급은 단순한 구조적 특질이 없다는 사실은 투쟁의 신호이다. 반면 계급 대립은 상징화로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동시에 불가능하지도 현실화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지제크의 해답은 경제의 급속한 재정치화(再政治化)이다. 정치화는 지제크에게 언제나 “특별한 요구가 불가능한 보편성의 대표자로서 기능하게 시작하는 점이다.” 지제크는 계급투쟁을 자본을 통한 사회적인 위치인 국지적이고 객관적인 결정으로 파악하지 않고, 급진적인 주체의 안에 놓인 것으로 파악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육화된 모순’이다. 오직 정치 투쟁에서 개별주의를 통해서만 어떤 보편주의도 등장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일은 종종 신용을 얻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이익을 바라며 투쟁을 시작하자 전체를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문제는 후기 정치학의 시대에 어떻게 정치화된 정치학을 세우느냐이다. 은유적 응축으로 행동하는 개별적인 요구는 그러므로 개별적 요구의 초월적인 것과 사회 뼈대의 순수한 재건축을 겨냥할 수 있다. 지제크는 자크 랑시에르를 따라 사회의 짜인 구조와 “위치 없는 위치”를 배제한 자리에 진정한 정치적 갈등이 자리한다고 본다.
지제크는 변증법을 화해나 종합적인 관점이 아니라, 헤겔이 언급했던 ‘모순은 모든 동일성의 내적 조건’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이 명제를 통해 헤겔은 어떤 것에 대한 관념은 언제나 불일치로 분해되며, 이 불일치야말로 그 관념이 애초에 존재하게 된 필연성임을 주장한다. 즉 지제크에게 진리란 차이가 매끄럽게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모순어법적 사유 방식’이라 칭해지는 지제크의 특유한 사유 방식은 지제크가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지제크는 자신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프로젝트의 편에 서고 있다고 주장해 오고 있지만, 그 프로젝트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불확실하다. 일각에서는 지제크의 이론적 논증은 역사적 사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지제크는 통찰보다는 도발로 일관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