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철학뿐 아니라 사회 및 정치 철학 분야에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고전적인 관찰-귀납의 과학 방법론을 거부하고, 과학자가 개별적으로 제시한 가설을 경험적인 증거가 결정적으로 반증하는 방법을 통해 과학이 발전함을 주장하였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과학 철학자로 꼽힌다.
칼 레이먼드 포퍼 경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영국의 철학자로,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포퍼는 "귀납이 아닌 연역만으로 과학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반증을 소개했다. 포퍼의 반증주의는 귀납 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였지만, 반증 사례를 무시하고 연구하여 성공한 해왕성 발견의 사례, 음파의 속도 문제 해결의 사례 등은 반증주의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다른 반증주의의 한계 사례 중엔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은 절반이다.'와 같은 문장이 있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옳은 문장이지만, 반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과학적인 진술로써 사용된다. 또 다른 사례로는 만유인력 법칙이 있다. 이것은 현재로서는 반증이 불가능하지만,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포퍼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입장이 논리실증주의 자들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과학철학자로서 포퍼의 명성을 높여준 《탐구의 논리》에서 그는 논리실증주의의 학문적 노선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다. 논리실증주의는 검증가능성을 의미 기준으로 내세워 검증 불가능한 언명을 무의미한 언명으로 분류하였다. 그들은 이 기준을 사용하여 과학은 의미 있는 언명으로, 윤리학이나 형이상학의 명제들은 무의미한 언명으로 분류하려고 하였다.
경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명제 가운데 과학적인 언명만이 검증 가능한 언명이기 때문에 유의미하다는 관점이다. 포퍼는 검증 주의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논리학의 구조 안에서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자연법칙은 보편 언명이며, 관찰 결과를 보고하는 언명은 단칭 언명이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단칭 언명을 수집하였다고 할지라도 보편 언명이 논리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포퍼는 검증가능성 대신에 반증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가설은 단칭 언명에 의해 검증될 수는 없지만 반증 될 수는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희지 않은 한 마리의 백조"를 관찰하였다면 "모든 백조는 희다"는 언명은 거짓이 된다. 포퍼는 '반증 가능성'을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분하는 구획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연구가 '과학적 발견의 논리' 곧 '과학의 방법'에 대한 연구이며,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 대한 연구이다.
이 문제는 '과학이 무엇이며', "경험 과학에 속한 언명(이론들,가설들)과 다른 언명 특히 사이비 과학적 언명, 전과학적 언명, 형이상학적 언명, 수학과 논리학의 언명을 구별하는 기준"인 구획 기준의 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포퍼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모범 답안을 제시해 온 전통적인 귀납 주의 과학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이 과학의 징표로 생각해온 귀납적 방법을 과감하게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과학을 해석할 수 있는 통찰을 부여한 개념이 바로 '반증 가능성'이다. 반증 가능성은 포 퍼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포퍼는 '반증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가 인식론의 근본 문제로 설정한 '귀납의 문제'와 '구획 기준의 문제'를 해결하고 추측과 반박을 새로운 과학의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과학은 추측과 반박을 통해 끊임없이 진리에 접근한다는 지식의 성장 이론은 반증주의 과학 이론의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구획의 문제는 더욱더 중요한 문제인 진리의 문제와 구별된다. 거짓으로 밝혀진 이론도 거짓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가설, 과학적 가설의 성격을 지닐 수 있다."라고 하였다.
과학을 높이 평가하는 시대 정신에 편승하여 저마다 자신의 주장이 과학적이라 주장하는 상황에서 구획 기준이 있다면 이것을 사용하여 사이비 과학의 기만을 폭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퍼가 구획 기준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도 이러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당시 과학을 표방하고 나온 정신분학자과 마르크스주의가 비과학적임을 입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두 이론에 대해 어느 정도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러 주의자들은 순종하는 아들과 반항하는 아들 모두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포퍼는 아들러의 이론은 반증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포퍼의 합리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 전반에 확대 적용될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철학의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합리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동일하게 본다.
철학과 과학에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합리적 토론의 방법이며, 이 방법은 "문제를 분명히 진술하고 그에 대해 제출된 다양한 해답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과학 이론은 단지 비판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비판의 빛 아래에서 수정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신화와 구별되고 비과학과 구별된다. 합리주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그는 '열린사회'로 응용하여 사회철학에까지 확대하였다.
진정한 합리주의자는 자신을 포함한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판만 하고 새로운 관념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반면 인간의 관념에 한해서는 오직 비판적 논의만이 찌꺼기에서 낟알을 가려낼 수 있다. 사상의 수용 혹은 거부가 결코 철저하게 이성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관념을 다각도에서 검토하고 타당한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성숙함은 오직 비판적 논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비판적 논의에 대한 분석에는 인간적 측면도 포함된다.
합리주의자들은 비판적 논의가 사람 사이의 유일한 관계가 아니며, 오히려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비판적 논의는 우리 삶에서 매우 드물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합리주의자는 비판적 논의의 근본이 되는 주고받기(Give and Take) 태도가 철저히 인간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비판적 논의에 임하려면 이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비판적 논의 태도는 오직 다른 이들의 비판을 거쳐서만 생길 수 있으며, 다른 이들의 비판을 통해서만 자기비판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존재'라는 근대적이고 신화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이성이나 합리주의를 논할 때는 오직,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통해, 그리고 나아가 자기비판을 통해 '학습'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합리주의자는 한 마디로,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 게서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아가 남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에 대한 남의 비판을 쾌히 받아들이고 남의 생각을 신중히 비판함으로써 타인에게서 기꺼이 배울 의향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