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에게서 철학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평정,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무통의 특징이 있다. 에피쿠로스의 많은 사상이 그 이전의 철학자들, 특히 데모크리토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그는 결정론에 관해서는 데모크리토스와 의견을 달리했다.
그는 그가 다른 철학자들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했으며 다른 철학자들을 비난했고, 그는 의견들을 스스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했다. 에피쿠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학파라 불리는 학파의 창시자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초기 멤버에는 Hermarchus, Idomeneus, Leonteus, 그의 아내 Themis ta, 풍자 작가 Colotes, 람사쿠스의 수학자 Polyaenus와 Metrodorus가 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규모는 작지만 매우 헌신적으로 그를 추종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여성을 예외가 아닌 정식으로 받아들인 첫 학파였다.
이 학파는 원래 에피쿠로스의 집과 정원에서 열렸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에 있는 조각은 세네카의 편지 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방황하는 나그네들이여, 여기야말로 당신이 거처할 진정 좋은 곳이요. 여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善)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는 쾌락과 고통은 무엇이 좋고 악한지에 대한 척도가 되고, 죽음은 몸과 영혼의 종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신은 인간을 벌주거나 보상하지 않고,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세상의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는 빈 곳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행복의 재료로 중요히 여겼고, 학교는 친구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라 종종 비유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계급을 매겼고, 그들이 그의 교의에 맹세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은 그와 동시대의 그리고 그 이전의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과는 다른 사상이었으나, 데모크리토스의 사상이 가졌던 여러 원칙과 같은 원칙들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직접적인 관찰과 이론적인 추론으로 시험 된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과학과 과학적 방법의 발전에서 중요한 인물이 된다. 데모크리토스처럼 그 또한 세상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조각들이 빈 곳을 떠다니는 것이라고 믿은 원자론자(atomist)였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원자들이 아무런 계획이나 목적 없이 충돌하고 되튀며, 서로 부착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에피쿠로스는 자연과 물리에 대한 많은 생각들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학적 개념들을 예견했다. 그의 상호관계에서의 윤리에 대한 주장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최초였으며 윤리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한 사람에 대한 피해의 최소와 다른 사람에 대한 최대의 행복을 강조함으로써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의 공식화와 구별되었다. 에피쿠로스는 당시에 흔하던 신을 두려워하고 신을 숭배하는 전통을 깨뜨린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종교적 활동을 신을 생각하며 그들을 하나의 행복한 삶의 예시로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에피쿠로스는 전통적인 그리스 종교 활동에 참여했으나 신에 대해 거짓된 생각을 갖는 것은 잘못됐다고 가르쳤다. 그에 의하면, 신들은 불사의 존재이며 축복받은 존재이고, 이 이외에 그 어떤 부가적인 가치를 신에 부과하는 것은 불경한 행위이다.
그는 그 입자들의 운동이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가끔 방향이 바뀐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는 달랐다. 이것은 이전의 원자론에서는 필연적이었던 결정론을 피하고 세상에 자유 의지를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은 우리가 흔히 믿는 것처럼 나쁜 자를 벌하고 착한 자에게 상 주지 않는다.
대중들은 신이 사악한 인간에게는 악을 주고, 신을 모델로 삼아 올바른 생활을 하는 인간들에게는 축복을 준다고 믿지만, 에피쿠로스는 실제로 신들은 인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믿었다.
에피쿠로스 사상은 쾌락은 방탕자의 환락이 아니라, 모든 정신적·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특히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했던 퀴리네 학파와는 달리, 지속적이고 정적인 쾌락을 추구했다. '아타락시아'란 바로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널리 퍼져서 종교처럼 되고 큰 영향을 끼쳤다. 에피쿠로스는 자연학에 있어서는 원자론적 유물론을, 윤리학에 있어서는 쾌락주의를 주장하여 쾌락주의 철학의 시조가 되었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선함과 악함의 궁극적인 도덕적 기준이다. 만약 고통이 쾌락보다 더 큰데도 그것이 선택되었다면 그것은 그것이 결국에는 더 큰 쾌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지나친 방임에 대하여 명료하게 경고했는데, 그것이 때때로 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현대의 ‘숙취(hangover)’에 대해 말 하는듯한 그의 한 이론에서 에피쿠로스는 너무 열정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한 사랑 대신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을 곁에 두는 것을 고요하고 평온한 삶을 지켜나가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에피쿠로스가 무분별한 쾌락의 추구를 지지했다고 흔히 오해받지만, 그가 진실로 원했던 것은 고통의 부재-죽음의 공포와 신의 응보로부터 자유로운 만족감과 고요함의 상태-였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고통으로 괴롭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쾌락이 필요 없고, '완벽한 마음의 평화의 상태'(ataraxia)가 된다. 모든 선하고 나쁜 것은 쾌락과 고통의 지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