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말 피타고라스는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종교 교리를 가르쳤던, 이오니아의 그리스 철학자이자, 피타고라스 학파라 불린 컬트 종교 단체의 교주이다.
그는 위대한 과학자나 신비주의자, 수학자로서 흔히 추앙받으며, 특히 그의 이름을 딴 유명한 정리인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에 관해 알려진 정보가 대부분 그가 죽고 수 세기 후에 쓰인 것이라서,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매우 드물다.
피타고라스는 사모스섬에서 태어났으며, 아마도 어린 시절 이집트를 비롯하여 여러 지방을 널리 여행하면서 학식을 닦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로뿐 아니라 그에 관한 전설과 혼란으로 그의 실제 공적이 흐려져서, 누가 그의 가르침에 관해 자신이 있게 답을 주기가 힘들고, 일부는 그가 수학과 자연철학에 기여를 남겼다는 사실에까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피타고라스에게 돌려진 많은 공적은 어쩌면 사실 그 동료나 제자의 공적이었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생애에 관해 알 수 있는 정확한 사실이 매우 드물고, 그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가 상당히 최근의 것이며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의 삶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렴풋한 윤곽 정도가 전부이다.
기원전 530년경, 피타고라스는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토네로 이동하여 종교적인 학파를 세웠다.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피타고라스가 개발한 종교적 의식과 훈련을 수행하고 그의 철학 이론을 공부했다. 그의 제자들이 모든 것은 수이며 수야말로 궁극적인 본질이라고 믿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피타고라스는 최초로 자신을 철학자,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른 사람이라고 한다. 피타고라스 학파(피타고리안)를 둘러싸던 비밀스러움 때문에 허구적인 이야기가 사실의 자리를 대체하는 일도 잦았다. 이러한 허구적인 구전들은 피타고라스에 관한 상세한 자료들을 남긴 신플라톤주의 작가들을 통해 간절히 전해 내려온 것으로, 신과 관계되거나 신성의 증거로 여겨지는 사실까지도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다.
학파는 크로톤의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간섭했는데, 이가 결국 그 자신들의 몰락을 불러왔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회합하던 건물은 방화로 소실되었고 피타고라스는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년을 메타폰툼에서 보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이 수라고 주장했다.
우주론, 수학, 과학, 그리고 미학을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 이 세계를 단 하나의 법칙에 지배되는 정돈된 전체로 입증하려 하였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무한 앞에서, 그리고 한계 지을 수 없는 것 앞에서 일종의 신성한 공포를 느꼈다. 그래서 현실의 경계를 정하고 질서를 부여하며,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을 숫자에서 찾았다.
우주에 대한 미학적-수학적 전망은 이렇게 피타고라스에 의해 탄생하였다. 피타고라스에 따르면 혼이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불멸하는 실체이며, 몸이 소멸할 때마다 혼은 다른 동물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이를 혼의 전이설이라 한다. 이집트를 침공해온 페르시아 제국 사람들이 그를 다른 학자들과 함께 바빌로니아로 끌고 간다.
피타고라스는 그곳에서 보낸 약 12년 동안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사들과 서기들로부터 방대한 지식을 전수한다. 밀레토스의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아래에서 공부하였고, 스승 탈레스의 주선을 받아 이집트로 유학을 떠나 23년 동안 나일강 연안의 여러 신전하러 다니며 멤피스의 사제들에게서 천문학과 기하학 등을 배우는 한편 그들의 신비 사상에 입문한다.
그는 영혼의 정화가 음악의 목적이라는 설을 주장하고 음의 화합을 현의 길이의 비례로 설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타고라스는 음향학자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은 저작을 남기지 않았으며, 이른바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러한 이론이 후세에 전해졌다. 또한 순정 5도(純正五度)를 반복하여 겹친 음률을 피타고라스의 음계라고 한다.
피타고라스 음계는 3:2 비율에 기반해 있는 음률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소클라테스가 남긴 언급은 제하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와 이암블리쿠스, 포르피리오스가 남긴 자료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자세히 연구하게 된다.
역사가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능하다고 보이는 진술만을 고려하려고 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만약 그에 관한 모든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진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피타고라스가 활동했다는 영역이 극단적으로 방대해진다.
피타고라스가 사망한 후 그의 제자들은 피타고라스의 사상을 계속 발전시키고 전파하는 데에 노력하여 기원전 5세기 말에는 이미 피타고라스 학파와 사상이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이며 특히 피타고라스 학파는 때때로 하나의 종교 단체로 취급되게 된다.
오늘날 흔히 일컬어지는 피타고라스에 얽힌 숱한 일화와 전설들은 이미 이때부터 지어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피타고라스 종교의 주요 교리는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영혼의 윤회를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콩을 먹는 것을 죄악시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종교는 국가의 관리권을 획득하였고, 성인들의 규칙을 세웠다. 그러나 갱생되지 못한 사람들이 콩을 동경하는 바람에 반역을 저질러서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피타고라스의 부모는 그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여 어려서부터 리라 연주와 그림, 운동을 배우도록 하고 긴 여정의 장삿길에 함께 데려가기도 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조화는 미덕이다. 건강과 모든 선 그리고 신성 역시 마찬가지이다"고 하였다.